나폴레옹 초상화의 보이지 않는 손과 암호화폐의 고래와 싸울 모비딕 에이햅 선장이 존재하는가?
나폴레옹을 그린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도 조끼 안에 손을 집어 넣어 배를 만지는 듯한 자세가 빈번히 등장해 ‘나폴레옹 포즈’라는 이름이 붙었다.
1895년 나폴레옹을 연구하는 학자 J.E.S 터켓은 나폴레옹 포즈가 비밀스러운 조직의 수신호라는 새로운 가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프리메이슨 규율을 다룬 책에서 나폴레옹 포즈와 같은 그림을 발견했고, 나폴레옹이 비밀조직 프리메이슨의 회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프리메이슨은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성배를 지키기 위해 결성된 템플 기사단은 전쟁이 끝난 후 유럽의 모든 부와 권력을 거머쥐며 새로운 지배 계층이 되었다. 템플 기사단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빌린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템플 기사단원들을 이단과 음란죄로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살아남은 템플 기사단원들이 그 후 비밀결사를 유지해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하고 루이 16세를 처형해 복수했다는 음모론이 있다. 프리메이슨이 사회의 엘리트들을 조직에 끌어들여 세계를 은밀히 지배한다는 음모론은 여전히 소설과 영화의 주요 소재이다.
나폴레옹 비서가 남긴 기록을 보면 1802년부터 나폴레옹은 명치 부위에 심한 통증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책상에 기대거나 의자에 팔꿈치를 대고 조끼의 단추를 풀고는 오른손을 넣어 아픈 곳을 문질러 통증을 완화시켰다고 한다.
위산이 역류해 가슴이 타는 듯한 증상을 느끼는 역류성 식도염이라던지, 심한 위염과 위궤양, 또는 위암 같은 경우에는 명치 부위에 통증이 간헐적으로 지속됩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어바웃어북, 박광혁 지음, 페이지 77-78
나폴레옹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사납게 날뛰는 백마 위에서도 침착하게 진군을 명하는 나폴레옹의 포즈는 이상적인 영웅의 같다. 실제 나폴레옹이 타고 있던 백마는 다름 아닌 노새였으며, 그는 길잡이가 이끄는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던 것이다. 초상화나 의뢰한 명화는 자신의 홍보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그리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실제 위장 질환이 있었다면 이런 질병이나 콤플렉스를 감추고 절대 초상화등으로 드러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위 책의 작자와 견해를 달리한다.
그리고 프리메이슨 상징은 버젓이 너도 인간이니 하는 드라마 속에서도 등장을 한다. 성전 기사단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전사들(라틴어: Pauperes commilitones Christi Templique Solomonici), 속칭 성전기사단(聖殿騎士團, 프랑스어: Ordre du Temple; Templiers, 영어: Templar order; Knights Templars)은 기독교의 기사수도회 가운데 가장 유명한 조직이다. 1139년 교황청의 완벽한 선물 칙서로 공인되었다.
십자군에 참여하고자 하는 귀족은 부재중 전 재산의 관리를 성전기사단에 맡겼다. 이런 식으로 기독교 세계와 우트르메르 일대에서 부를 축적한 성전기사단은 1150년부터 성지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신용장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순례자들은 출발하기 전에 자기 고향 지역의 성전기사단 지부에 귀중품을 맡기고 자신이 맡긴 물건의 가치를 증빙하는 문서를 받았다. 그리고 성지에 도착하여 문서를 제시하면 증빙된 가치와 등가의 재물을 받는 식이었다. 이 획기적인 계약방식은 은행업의 초기 단계이며 최초의 수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금융업을 통해 순례자들은 도적들로부터 비교적 안전해질 수 있었고, 성전사들의 돈궤도 두둑해졌다.
즉 유태인들이 환전업무를 하면서 서양 자본주의 맹아가 되었다는 생각과 달리 성전기사단이 금융업무를 시작하면서 출발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암호화폐의 경우 지중해의 섬 말타가 유명한데 말타 기사단이란 조직이 역사적으로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힌트를 주자면 가장 부유한 세력의 꼭대기는 스위스 근위병을 자신의 호위병으로 사용하며 역사적으로 1500년 이상 존재해온 그룹이다. 역사를 연구해보면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유태인, 로스차일드 가문 모두 그들의 얼굴마담이며 하수인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사라지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가설도 있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초인플레 현상을 경험해 독일의 통화 관리자였던 로스차일드 출신 마르 샤흐트는 1923년에 렌텐 마르크를 도입했다. 텐 마르크는 토지를 담보로 발행했다는 것과 발행이 24억 마르크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1923년 당시 독일에는 제국 마르크와 렌텐 마르크 두 개의 통화가 공존했는데, 샤흐트는 통화가 신뢰를 가지려면 통화량을 적게 유지하려고 했다. 결국 샤흐트는 1조 대 1의 비율로 제국 마르크와 렌텐 마르크를 교환해주기로 결정했다. 로스차일드 가문도 2,100만 개로 한정되어 있는 비트코인 발행체계를 염두에 두고 본격 투자하여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 것이다.
역사를 보면 마이어의 셋째 아들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영국으로 건너가 솜털, 실, 담배, 설탕 등의 상품 거래로 큰 부를 쌓았다. 1815년 6월 20일, 런던 증권거래소에는 6월 19일 대영제국과 프랑스 간의 워털루 전쟁으로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몇 번이고 '로스차일드의 기둥'을 보았다.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주식을 팔고 살 때 늘 기대어 있는 기둥을 사람들은 ‘로스차일드의 기둥’이라고 불렀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 남쪽에서 벌어진 워털루싸움의 뉴스도 말을 사용한 파발꾼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워털루싸움에 앞서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영국군이 패했고 이번에도 형세는 매우 나쁘다는 소식이 전했다. 그런데 네이선은 로스차일드의 기둥에 기대어 천천히 영국 공채를 팔기 시작했다. 네이선(로스차일드)이 팔았다는 소문이 거래소 안에 일제히 퍼졌다. 추종자들이 뒤따라 영국 공채는 대뜸 크게 폭락했다. 값이 극한까지 폭락하여 마지막 한계선까지 내린 순간, 네이선의 손가락은 별안간 바뀌어 대량 매입 신호를 되풀이했다. 네이선은 사고 또 샀다. 대폭락한 공채를 바닥값으로 마구 사들였다. 사실 네이선은 전서구를 통해 소식을 미리 알고 투매를 위해서 일부러 자신의 의도와 반대되는 행위를 한 것이다.
2018년 8월 25일 기사에 따르면 이더리움을 ICO 당시 투자했던 고래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일부 이더리움을 처분하려고 하는지 자신의 개인 지갑에서 비트파이넥스 거래소 지갑으로 이더리움을 대거 옮겼다. 익명의 이 고래는 초창기 이더리움 ICO 때 제너시스 블록에서 배당을 314,000ETH나 받았으며 이번 주에 그 중 20,000ETH를 비트파이넥스 지갑으로 이동시켰다.
이 기사 진위가 긴가민가 했는데 9월 초부터 이더리움 대 폭락 사건을 예기한 찻잔속의 태풍인 것이었다. 세계를 뒤흔드는 음모세력은 존재하는지 여부는 불확실성해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는 고래는 분명히 존재한다.
멜빌의 흰고래 모비딕 백경이라는 소설에서 포경선 피쿼드호(號)의 선장 에이햅이 등장을 한다. 이런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자유경제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정신을 해치는 나폴레옹 옷속에 숨은 익명에 가려진 이런 프리메이슨 비슷한 자들을 일반인들은 깨닫고 심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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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교 2018-11-16 14:34
잘 읽고 갑니다.
셋스킹 2018-11-12 16:55
데일리코인화이팅
전수미 2018-11-01 01:00
좋은 글입니다
심용재 2018-10-24 10:49
좋은내용입니다.